그날도 나는 이기고 있었다.
칩은 쌓였고, 테이블 분위기는 묘하게 조용했다.
딜러의 손놀림이 빨라질수록, 내 심장은 더 차분해졌다.
이 판, 냄새가 났다.
좋은 냄새 말고… 끝물 냄새.
이상하게도 블랙잭을 오래 하다 보면 안다.
“아, 이제 여기까지구나.”
아직 지고 있지도 않은데, 더 하면 안 된다는 감각이 먼저 온다.
그날 나는 벌고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상하리만큼 찝찝해서.
블랙잭으로 돈을 벌어본 사람만 아는 게 있다.
이 게임은 이길 수는 있지만, 오래 이길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다들 착각한다.
나도 그랬다.
카드 흐름 읽고, 배팅 조절하고, 확률 계산하면
“이거 그냥 실력 게임이네?”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단기 수익은 난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항상 같은 벽에 부딪힌다는 거다.
이길수록 판이 불편해진다.
딜러가 바뀌고, 속도가 달라지고,
괜히 시선이 느껴진다.
그때 깨닫는다.
아, 여긴 내가 주인인 판이 아니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블랙잭을 싫어해서 그만둔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돼서 무서워졌다.
“이 돈, 계속 여기서 굴려도 되나?”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 구조 안에서 더 크게 벌면, 더 크게 잃게 된다는 걸
이미 몇 번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판을 고를 수 있는 곳’을.
해외선물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코웃음을 쳤다.
차트 보고 버튼 누르는 게 뭐가 다르냐고.
그냥 다른 이름의 도박 아니냐고.
근데 설명을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
손절을 먼저 정한다
-
배팅 크기를 미리 통제한다
-
확률보다 흐름을 본다
-
유리하지 않으면 아예 안 들어간다
이거…
내가 블랙잭에서 하던 사고방식이랑 완전히 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 정직했다.
처음 해외선물 계좌에 넣은 돈은
블랙잭으로 벌어둔 금액 중 일부였다.
이상하게도, 버튼을 누르는데 손이 덜 떨렸다.
왜냐하면 여기엔 딜러가 없었다.
나를 쳐다보는 눈도 없었다.
“너 이제 그만 따라”라는 무언의 압박도 없었다.
여기선
-
언제 들어갈지 내가 정하고
-
언제 나올지 내가 정하고
-
어디서 틀렸는지도 내가 안다
질 때도 억울하지 않았다.
손절은 내가 약속한 결과였으니까.
그게 제일 컸다.
블랙잭에서 질 때는 항상 이런 생각이 남는다.
“이건 내 실수가 아닌데…”
해외선물에서는 다르다.
“아, 이건 내가 규칙을 어겼구나.”
그 차이가 사람을 바꾼다.
게임을 하던 사람이
거래를 하게 된다.
지금도 가끔 카지노 영상이 뜬다.
블랙잭 테이블을 보면 여전히 익숙하고,
한 판 정도는 이길 자신도 있다.
근데 안 한다.
왜냐하면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기는 판과
버는 구조는 다르다는 걸.
블랙잭으로 번 돈을 해외선물에서 굴린다는 말이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한테 그건 자랑이 아니다.
탈출에 가깝다.
운이 허락해주는 돈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돈으로 넘어온 것.
그 차이를 아는 순간,
다시는 테이블로 돌아갈 수가 없다.


